오돌군

오도리와 왜 늦어졌는지-

멍샘 2014. 8. 18. 23:02

오돌군 임신 4개월즈음에-


 일단은 화초씨와의 결혼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올리기로 하고... 

내 어린 기억에는 늘 어려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을 못가본 적도 있고... 특히 이사를 많이 해야했다. 경제적인 문제로 A->B->A 이런식으로 초등학교 전학을 했을때의 기분이란 참... 특히 마지막에 A로 다시 돌아왔을때... 반 친구들이 모두들 알아보고 수근거릴때의 기분이란 참 가관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결혼을 하면서 한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 집"을 살때까지는 아이를 갖지 말아야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에 그것이 될리 만무했고, 지방 소도시에 사는 것도 아니고.. 3,000만원 가지고 시작한 결혼 생활이 얼마나 윤택했겠는가. 다행인 것은 알뜰하게 잘 모으는 화초씨를 만났고, 결혼 3년만에 8,000이라는 대출을 다 상환했고, 4년만에 신혼때 살던 아파트 살돈을 모았으나, 양재동으로 이사오면서 다시 빚덩어리에 깔려버리고 말았다. 

주변에는 슬슬 아기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장인, 장모가 안타까워 하시던 모습에... 화초씨도 적잖이 부담을 느꼈으리라. 구태여 안가지기 위해서 피임을 하거나 그런것도 아닌데, 막상 가지려고 하니, 되레 부담도 되고... 아이를 가지기로 하고 화초씨가 병원에서 날짜를 받아왔다. 

3일간 매일 ...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날은 어떻게 임무를 완수하였는데... 두쨋날에 하려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자빠진겐가' 하는 생각에 도저히 시도할수조차 없었다. 그 하루에 저 녀석이 우리 곁으로 왔다. 시험관을 오래한 친구녀석이 시험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때 그냥 아이없이도 잘 살자 라고 먹었던 다짐과 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군시절을 회상하듯 스쳐 지나가버렸다. 그렇게 녀석은 나와 화초씨 곁에 와줬고, 나는 녀석에게 오도리 (오광+고도리) 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고스톱을 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광+고도리를 하자면 기본 4고가 불려지고, 시원하게 벌 수 있다. 헤헤 ㅋ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어려운 너였다는 거지. 

 예민한 화초씨는 즉시 입덧을 시작했고, 그렇지 않아도 삐쩍 마른 화초씨는 167Cm, 41Kg로 출산을 하게 된다. 오죽하면 사람 착한 매형이 화초씨의 팔뚝을 보고 나에게 많은 분노를 하셨다고 하니... 헌데 나로서도 엄청난 노력을 했다. 조금만 먹고싶다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다 먹였고... 

 2주가 흘렀지만, 오도리가 태어나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8/2는 내 생일이었고...화진씨와 하야트호텔 Paris Grill 에서 브런치 부페를 먹고 ...

8/3에는 처갓집에 내려가서 장인, 장모 모시고 외식을 간단하게 화초씨를 처갓집에 내려다주고 서울로 올라왔다. 빨래 삶는 것을 부탁하길래, 수건과 속옷, 면티등을 모두 펄펄 끓는 물에 삶아서 빨아 널고, 보고를 하고... 맥주 한캔 마시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누웠다. 자기전에 스마트폰으로 장기를 한판 둔것이 이렇게 큰 결과가 나올줄이야... 밤에 혼자 누워하다보니 소리를 줄여서 게임을 하였고, 한시쯤에 잠들었는데... 벨소리가 들리는거 같았다.  전화를 받았다.

"오빠~ 왜 전활 안받아. 오도리 지금 낳아야 된다네요. 빨리 와줘요. 3층으로 오면 되요"

반쯤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멍해졌다. 분명히 예정일은 8/10이었고, 지난주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도 예정일을 지날거라고 얘기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까 저녁에도 별 말 없었는데...' 

옷입고 나오는데 1분이나 걸렸을까... 자다가 밤에 오는 전화는 늘 기분이 안 좋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도 늘 자고 있던 밤에 왔다. 낮에 처갓집에 들렸다가 올때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입구쪽에 주차를 해 놓은게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구룡터널을 지날때 속도계는 180Km/H 였는데... 대왕판교로에서 성남으로 빠지기 위해 신호 대기중일때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화초씨가 02시 09분에 전화를 했었는데 내가 안받았고, 11분에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혹시라도 그 2분이...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지배할즈음에 병원앞에 도착하였고, 신호위반 불법 유턴 후 P모드에 놓고 단숨에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화초씨 이름을 대는 순간 간호사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고... 난 이때 알았다. 산모의 보호자는 남편밖에 안된다는 것을 ... 

분만 대기실에 가니, 장모님께서 계셨고, 늘 깔끔하게 입고 다니시는 평소 장모님의 복장을 볼때 어지간히 놀라서 운전해서 오신 모양이다. 

살다가 주차라인 이외 구역에 차를 대본 적이 없는 내가 주차장 가는 길을 막고 차를 내버려 두다니. 

간호사에게 가보니, 몇가지 동의서와 영양제, 산후 회복실등을 고르라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조..좋은 거로 해주세요. 선생님 제가 지금 차를 그냥 던지고 와서 주차를 해놔야 할거 같'

' 지금 애기 나와요 남편분. 지금 어딜가시겠다는거예요 ~?"

"예 알겠습니다." 

분만실밖으로 화초씨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선생님들이 이렇게 힘을 줘라. 저렇게 힘을 줘라. 소리도 지르고... 연배가 좀 되시는 간호사분이 나오시더니, 1분안에 차 대고 오라고 하신다. 차를 대고 부리나케 뛰어 올라오니, 이번이 마지막이예요. 꼭 힘주세요. 하면서 난리북새통의 소리가 들리고 ... 눈에서는 눈물만이 흐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기도를 하는데... 그냥 멍하니 기도를 하기 시작했을때... 간호사가 가운을 입혀준다. 소독을 하고 ...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수술실에 들어간다. 

갑자기 밝았던 조명이 꺼지고, 화초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던 순간 ... 예의 그 다리 사이에서 오돌군이 태어났다. 

탯줄을 자르고, 무게를 재고, 입에서 머금은 양수를 빨아내고, 씻기고 났을때... 

봉합을 하던 선생님이 화초씨에게 얘기한다. "지금 출혈이 심해서 빨리 꼬메야해요. 움직이지 말고, 마지막 힘을 주세요"

고생한 부인에게 키스해주라고 하는데... 눈물이 계속 흘러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분만실에서 나오니, 장모님께서 어떠냐고... 

"화초씨는 괜찮습니다."

"애기는 ? 오도리는?" 

"애기는 잘 모르겠고, 화초씨는 괜찮습니다. 애기는 괜찮은거 같아요"   어벙벙해져 있는데... 

회복실에 가면 산모분 올라가실거니까, 신생아실 앞에 가면 아기 사진 찍을 수 있을거란다. 

'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이게 무슨 소린가. 옆방에서도 힘을 주는지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리고...' 


 

2014년 8월 4일 03시 18분 출생, 2.84Kg 작게 태어난 오돌군. 내 아들답게 18분 후 36분에 최초로 찍은 오돌군. ^^


 회복실에 올라와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진통은 3일 오후 19시경에 이미 시작된거였다. 가진통이려니 여긴 화초씨는 참았고,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그렇다고 했다더라. 

4일 01시경에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장모님을 깨워 병원에 왔고, 관찰 결과 이미 자궁경부가 6cm 이나 열려있었단다. 

"의지의 화초씨" 두어시간 걸릴 거라는 얘기에 분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중 배가 너무 아파 의료진 호출을 했고, 그때는 이미 출산이 임박했던 것이다. 남편이란 사람은 전화도 안받고 잠을 자고 ... 에혀 ㅎ 분만실에 들어가서, 한시간도 안되서 출산을 한것이다. 

병원에 도착했을때 우스웠던 것은 ... 장모님의 차량이 후진이 안되더란 것이었다. D-N만 조작이 가능해서 장모님도 차를 던지셨고... 차를 살펴보고 오니 화초씨가 회복실에 올라와 있었다.



화초씨 분만 직후 (혹시라도 나중에 보면 초상권 운운할 것을 염려하여, 흐린 사진을 사용함 -_-) 


화초씨는 그렇게나 열심히 준비했던 무통 분만주사도 맞지 못했단다. 

"선생님 저는 무통주소를 맞기로 했거든요 ~?"

"이미 진통 시작되서 못 맞으세요. 그냥 낳으셔야 되요" 

에구 불쌍한 화초씨... 



태어난지 8시간만에 엄마품에 안긴 오돌군. 분만실에서 강제로 가슴에 안겨야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 

물론 신생아실에서 1016호로 오돌군을 데려온것은 아빠의 몫...  사촌동생들이랑 터울이 커서, 아이들도 안아보고, 조카들도 안아봤는데, 저렇게 작은 오돌군을 어찌 안아야 될지 몰라 손을 부들거리면서 데리고 와야했다. 병원에 3일 있으면서 지켜본 바로는 ... 대부분의 아기아빠들이 애를 어찌 안아야 될지 몰라 허둥지둥...ㅎㅎ 

오돌군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