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공공기관을 상대하는 회사 특성상, 올해 예산 집행을 연내에 마무리하기 위한,
모든 계약 업무를 종료하는 시점에서, 품질은 이래저래 죽어난다.
조금만 자리를 비워도 전화고 오고, 찾아오고, 메일이 오고, 메신저가 오고...
내년도 사업계획서 및 부서원 인사평가 등등... 정신이 없다.
올해는 처음으로 화초씨에게 결혼기념일에 현금을 건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성의가 부족하다는 것이지만, 주말마다 광화문에는 열심히 나갔으니,
성의가 부족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10월말에 신호대기중에 후방추돌로 차를 폐차하고, 다시 차를 구입하고, 보상 관련하여 여러가지를 신경쓰기 시작했는데, 경력직 충원이 생각대로 안되어, 출장도 많고 참으로 복잡했다.
그러다가 월초에는 출장지에서 또 후방추돌을 당하여, 통원치료를 시작했으니, 누구를 탓할수도 없고, 화를 내봤자 의미도 없는 행동일뿐. 출장지에서 렌트한 차량이어서, 차는 대차를 하고, 동행자들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출장을 가거나, 자정깨에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느라, 돌군 얼굴 본지도 몇일이 되었으니, 화초씨가 많이 피곤했으리라. 다행인 것은 돌군이 점점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도 하고, 인내하기도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어제는 오랫만에 서울에 서식하는 대학동기들을 만나, 소주를 한잔 했는데, 우리는 송년회날을 잡을때마다 어찌 이리 혹독한 날을 잡는 것인지, 새벽 두시에 자리를 마치고 대리를 부를까 하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가 나왔는데, 3시간밖에 못자고 나와서 그런지, 오전 내내 의자뒤로 기대어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오랫만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는데, 참으로 부지런하고, 이 추운날에도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니, 내가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 돌군이 학교도 못갔는데.. 라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고...
건물앞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대 펴본다. 담배포장에 경고그림도 들어간다고 하고, 어제도 느낀 것인지만, 담배필 공간이 너무 없다. 아직도 담배를 피냐는 인사를 받기도 하니, 이제 그만 저 동그랗고 긴것을 보내주어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한 친구는 오랫만에 봤음에도 안색이 안 좋아 보였는데, 건강검진 결과 이상이 있어, 재검을 받는다는 서늘한 이야기도 하니, 이제는 관리를 좀 해줘야 하는 시기가 온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도 본사 사무실에는 금요일 21시임에도 십수명의 직원들이 남아서, 월요일에 나가야할 문서들과 제품, 진단장비와 개발품을 들여다보고 씨름을 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연구소장과 나는 답답하기도 하고, 슬슬 올라오기도 하는데, 조용히 기다려본다.
면허증 갱신 안내문 도착의 주기가 짧아진 것을 보고, 면허증을 확인하였더니, 적성검사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않아 증명사진을 찍으러 근처로 나간길에 호두과자집이 있어 화초씨와 돌군을 위헤 몇개 샀다.
이번주에는 돌군과 좀 놀아줘야지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베프의 큰어머니상가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 인천에 다녀와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녀석의 사촌형님과도 꽤 안면이 있으니, 더 걸린다. 우리가 대학 졸업한 해에, 해사를 졸업한 형님이 임관과 동시에 결혼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사병으로 군생활을 할때에 그렇게 늙어 보이던 중령, 대령인데... 고교 동창녀석이 중령을 달고, 형님도 대령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시간은 만인에게 모두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였고, 그렇게 또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인가보다.
자리가 창가여서 어깨로 살살 들어오는 찬바람이 싫기도 하지만,
창가에 노여진 호두과자를 보니, 단것을 맛보고 정신없이 달려들 돌군도 생각나고, 또 단것을 준다며 어이없이 부자를 지켜볼 화초씨를 보고 있으니, 39살이 져무는 이 시간도 소소하게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특검의 성공적 수사와 탄핵 및 구속, 부역자 청산을 위해서 집에가서 맥주 한잔 하고 자야지.